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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러쉬 예전에 예고를 보고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한번 봐야지 생각하다가 미루고 미루고 이제야 봤습니다.
천재의 음악 이야기랑 엄마 찾아 삼만리 이런걸 조금 섞어 놓은 기분..이네요
잡소리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스포 있음)
에반(어거스트 러쉬)은 소리에 민감한 아이다.. 어디선가 멜로디가 들려온다.
고아원 아이들이 그렇듯 부모가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을 까 하는 불안감 어디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 어떻게든 부모를 찾고 싶다는 결심이 에반을 이끌고 소리를 쫒아 부모를 찾으러 나선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가봐야 어디까지 가겠는가..? 길을 가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구해져서 도시까지 오게 된다.
여기서 소리에 취해있다가 사회복지사의 번호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때부터 에반은 길거리 공연을 나서게 된다.
주인공 에반은 영화에서 보이듯 늘 소리를 쫒는다. 그리고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떠한 의무감이나 무언가를 쫒는 맹신과 같다. 왜그럴까? 에반의 음악에 대한 재능과 귓가의 멜로디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표현된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부모님이 두분다 음악을 하던 사람들로서 그 재능을 이어받은 것도 있겠지만...
사회복지사는(이름이 생각이 안남 ㅠㅠ) 고아원에 남겨진 아이들 돌보는 사람이다. 어쩌면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마음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향한 마음으로 향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아이들을 걱정하지만 현실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어른인 그는 아이들이 자신을 버린 부모를 기다리는 안타깝지만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길 바라면서도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을 까 걱정한다.
# 여기서 미국사회의 재미있는 점은 아이들이 입양을 결정하는 과정도 복지사와의 상담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한국의 입양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태도로 본다면 미국 사회는 스스로 행동을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고아원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그는 부모를 기다려온 날수를 세고 있는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에반 그는 아이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선생님의 입장이면서도 예전 자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에반을 동정한다. 스스로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동해 명함을 주고 에반이 부모를 찾아 고아원을 나선후 끊임없이 에반을 찾아다니게 된다.
영화는 에반(주인공), 크리스(아버지), 라일라(어머니)의 입장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면서 서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크리스는 라일라와의 추억을 잊지 못하다. 음악을 포기한채 살아간다. 라일라는 크리스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 깨어난 그녀는 아기(에반)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이에 삶의 의욕을 잃고 음악가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음악선생님을 하며 주변인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의 시작은 에반이 부모를 찾아 떠나가면서 이다. 복지사와의 상담을 마치고 에반은 고아원에서 기다리고 있는다면, 언젠가.. 입양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귓가에 들리는 멜로디를 이제 그저 듣고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때부터 에반의 엄마찾기가 시작된다. 무언가로 연결이나 됐다는듯이 에반이 이렇게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서 크리스에게도 라일라에게도 삶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에반이 귓가의 멜로디를 쫒아서 무언가를 계속 연주하고 재현해 나갈수록.. 두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게 되고, 몰랐던 진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10년전에 선택했어야하는 일이었지만 슬픔에 의해 정체되있던 서로의 시간들이 에반의 출발로 인해 움직이게 되는 느낌이다.
에반은 길거리에서 음악을 하다 위자드라고 불리우는 사람에게 음악을 배운다. 사실 음악을 가지고 하는 앵벌이 이지만... 에반은 멜로디를 쫒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에반의 재능을 알아본 위자드는 공연을 준비하지만.. 돈에 의해 마음껏 연주하지 못한다는 상황이 에반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찰나에 아이들이 사는 공간에 경찰이 들이 닥친다. 무언가 숨기려는 위자드의 모습에 에반을 찾으러 온 것이다. 에반은 도망치고 길을 걷다가.. 성가대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간다.
여기서 에반의 음악에 새로운 국면이 찾아든다. 성가대 꼬마로부터 간단히 배운 멜로디를 통해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게되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지금까지 자유로운 무형식의 정제되지 못한 들풀과 같은 연주였다면, 줄리어드에서 배우는 것들은 그에게 정제된 음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를 천재로 인식하지만 에반은 귓가의 멜로디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에반을 위한 공연이 준비되고...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아 갈 무렵.. 에반과 크리스는 우연히 만난다. 거리에서 연주하는 에반의 소리에 이끌려 크리스가 찾아온 것이다. 크리스는 어린나이에 연주하는 에반이 기특해 보이고 마음이 통하는것을 느낀다. 에반에게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고 음악을 할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겠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에게 하는 말 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고 에반의 지휘에 연주가 시작되자.. 그 멜로디에 라일라는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크리스 또한 찾아오게 된다. 청각적으로 예민하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지만.. 처음 라일라와 크리스를 만나게 했던 그날의 멜로디와.... 크리스와 에반이 만나 함께했던 멜로디.... 마지막 에반이 연주하는 멜로디.. 셋이 묘한 오버랩이 되는 느낌이다. 라일라와 크리스가 만나 사랑을 나누던 날의 멜로디가 서로에대한 그리움을 타고 서로의 마음에 남았고, 그 그리움의 멜로디가 잉태된 아기의 마음에도 남아.. 후에 에반이 멜로디를 쫒아 나오게 된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런 그리움의 마음이 서로의 멜로디에 담겨 서로를 끌어당기는 마력이 되지 않았을까?
서로를 향한 강한 그리움을 담아 추억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인연의끈이 작은 환상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