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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1 겨울의 기억... 지리산 종주.. 한 겨울 밤의 사투
해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지리산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라요. 

그때가 3년전인가 그랬을 거에요. 지리산 종주를 결정했죠.

젊기도 했고 돈도 별로 없고 해서 최단시간에 지리산 종주를 하고 일출까지 보자!! 결심을 했습니다. 

노고단에서 출발해서 하루종일 달려 장터목 산장까지가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일출을 보러 올라가는 게 계획이었죠. 

준비는 철저히 했습니다. 짐을 최소화하고 폴대랑.. 비니모자.. 간식...식사류같은거는 도시락인데..
물만 부으면 자동으로 데워지는 좋은게 있더군요. 

제가 출발하기 전날엔 지리산에 눈이 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지리산을 고속도로라고 말하지만.. 
푹푹 빠지는 길에서 하루종일 걷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출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 뿐이었죠. 

장터목 산장 전 산장에 도착하니 애매한 시간이었습니다. 

야간산행 제한시간을 30분 남겨놓은 상황이었고 장터목산장(마지막산장)까지는 한시간 인지 한시간 반정도인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 정도 코스라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그자리에서 포기하고 취침을 준비하더군요.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일출은 놓치는 거였습니다. 

야간산행이 걱정이 됐지만 젊음을 믿고 뛰어가면되지!!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야간 산행 제한이라는게.. 그냥 있는 일이 아니더군요. 
생각보다 해가 빨리 져버렸습니다. 헤드라이트를 가지고 갔지만.. 길이 모두 눈밭이라.. 

빛을 비춰도 반사되고 달빛에 반사되서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길이 아닌지도 구분이 안되는 거였어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폴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까지는 갑자기 떨어지는 곳도 있었고 그래서 잘 살피면서 걸어야 했었습니다. 

이제 걸어갈 길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실제 그런 곳이 있다고 한다면.. 길인지 낭떠러지인지도 모르고 걷다가 떨어져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발은 30~ 40센티미터씩 빠지고.. 날은 갈수록 추워지고 나무에 쌓여있던 눈들이 산바람에 휘날려 제 몸을 감싸왔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안경이 얼고 눈썹이 얼어갔습니다. 
가지고온 음식은 거의 떨어졌고.. 사탕 몇알만 남아 있더군요. 손난로를 가지고 갔지만 그것도 소용 없는 추위였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주위에 인적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적막이 감돌고 바람소리만 저를 감싸 왔습니다. 
남자지만.. 무섭더군요. 길은 언제 어디로 통할지도 모르고 이젠 앞뒤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돌아갈 수 있을 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걸어온 시간을 보니 50분은 걸어왔더군요. 거의 다온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앞은 언제쯤 도착할지 알 수 없는 거리.. 뒤로 가는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계속되는 움직임에 몸은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계속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추워지다보니.. 땀이 식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면서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푹푹 빠지는 눈길이었지만.. 등산바지라.. 방수가 잘 되서.. 푹신 푹신해 보이고.. 
쉬면 침대에 누운 것 처럼 편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미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걸은 상황이었고.. 눈은 피로로 점점 감겨왔습니다. 

그때 저체온증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잠들면 죽는다!! 이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에서 멈추는 순간 죽는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걷자!!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한걸음씩이라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으면 결국은 도착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추위도 어둠에 대한 공포도 낭떠러지가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모두잊고 지금 걷고 있는 순간에 집중했습니다. 다른것보다.. 내가 지금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소리가 들리더군요. 
마지막 산장에서.. 혹시모를 야간 산행을 하는 사람을 위해.. 안심시키기 위해 틀어놓은 소리였습니다. 

마음이 놓였습니다..

결국 일반적인 산행시간보다 약 한시간 정도 더 걸려서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결국 도착한 겁니다.

눈물과 땀과 콧물이 섞여서.. 말도 아닌 몰골이었지만.. 저한테는 드디어 도착했다!! 살았다!! 내가 해냈다!! 이런 생각이 섰여서... 감적이 북받쳐오더군요. 

산장에 계시던 분들은 어떻게 이시간에 올라왔냐면서.. 깜짝 놀라시고는 몸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얼른 봐주시더군요. 

오랜 외로움 후에 만나는 따뜻한 인정에 마음까지 깊이 녹아내렸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푹 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때 다리를 살짝 다쳐서 발목이 잘 안굽혀지는데.. (걷는데는 지장이 없음) 높은 경사를 오르다보니 그게 잘 안되서.. 발이 다 까졌더군요. 피가 나와서 양말이 흥건하게 젖어있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스트레칭도 하고 단잠도자고.. 일출을 준비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아직 어두운 시간.. 이지만 산장 내부는 일출을 준비하는 움직임으로 분주했습니다 .
저도 그 사이에서 모든 장비를 챙기고 준비했죠. 

어둠을 뚫고 바람을 헤치면서 한걸음 한걸음 앞사람 뒷사람이 서로를 보호해주며.. 전진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천왕봉!! 그 자리에 도착하고나니 너무 감동이더군요. 

특히 지난 밤 겪었던 모든 것들이 이자리에 서기 위해서 였다는 생각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산정상은 정말 추웠습니다. 눈바람이 날리고.. 구름이 아래 보여서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구름인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다들 일출을 볼 수 있을 까 걱정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지리산 일출은 일년에 1/3도 보기 힘들어서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고 하더군요. 더욱이 몇일전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올라오면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 힘들거라고 말씀하시던게 생각 나더군요. 

그렇게 기다리다가..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매서웠던 바람과 추위가 신기하게도 해가 떠오르면서 아래를 비추면서 다가오는 햇빛에 조금씩 가시는 거였습니다. 햇빛이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이렇게 온 세상을 환히 비출 줄이야...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지난 밤의 사투도..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12월이되고 싸늘 한 날씨가 되면 저는 그 때의 추위가 생각나곤합니다. 
정말 추웠는데.. 

그렇지만 그때의 추위와 고생은 새로운 자산이 되었습니다. 
목표를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한걸음이라도 전진하고 있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미래를 준비하면서 고민과 걱정에 쌓일 때마다 다시 힘을 내고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만난 일출처럼.. 최선을 다해온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기면서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Posted by 朧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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